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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雜說)/잡설(雜說)

[雜說] 일베 조각상에 대한 진중권의 몰이해

by Like the Wind... 2016. 6. 2.

진중권, 그는 즐기는 중이다.
조영남 대작 논란에서 그를 옹호하며 휘갈겼던 팝아트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사회적 이슈,
특히 일베 조형물에 대한 대중들의 비난이 쇄도하는 주제는
자신의 지식 자랑질 하기 더 없이 좋은 이벤트일 것이다.
자신에 의한 사회적 논란의 파장이 커질수록 그의 마스터베이션은
황홀경으로 치달을 것이고.

서울대.
독일 유학파.
미학자.
진보논객.
어디서 원문을 상당수 인용했을 법 한, 또한 그러다 해석이 꼬여
난독증을 유발시키는 저서들 몇 권.
변희재, 황장수, 일베 간결로 이어지는 토론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이 아니면 모든 것이 틀렸다는 무조건적 전제로 표출되는 비이성적 분노.
황장수와의 토론 당시 ‘황’이 조작된 NLL 자료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반박논리가 없는 그의 얼굴이 벌개지며 황망스러워하던 그 처절함.

오래전, 블로그에 한번 기술한 일이 있지만 19대 총선 바로 전 해,
진보 지지자들이 나꼼수에 대한 열광이 전국을 뒤덮었을 즈음
상대적으로 극심한 소외감을 참지 못하고 SNS에서 나꼼수를
저질 코미디라고 도배하다 못해 한겨레 칼럼에서까지 그들을 공격하여
대중들의 비난이 들끓자 계약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한겨레 필진에서
나가떨어진 그.
이후 진보 인사들과의 좌충우돌 진흙탕식 필화 사건(?)들이 이듬해 총선에서
야권이 대패한 결과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그 블로그 글에서
대충 밝힌 바 있다. [雜說] 나꼼수, 19대총선, 김용민 그리고 진중권.

그는 항상 대중, 특히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회자되면서도 진보진영에서조차
자신만의 잣대로 자신보다 우월하지 못한(특히 학벌) 이가 자신을 능가하는
대중적 진보주의자로 존중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변종의 인물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명제.
그는 기득권만을 추종하는 일부 야권 정치인들을 제외한다면 진보진영의
분열과 이간질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인물 중 상층부에 속한다고 확신한다.
조금 다른 측면이기는 하지만 새누리당, 친일기득권 세력, 조선일보 보다도...

일베의 아이콘을 표현한 조형물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표현의 자유에도 최소한의 공공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최소한의 공공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일베의 폭식투쟁이나
특정 지역에 대한 적개심, 여성에 대한 비하 등 그들은 이 공동체가 낳은
기형아들이며 공적일 뿐이다.
관심 주는 시간조차 아까운, 입에 올리기에도 벌레 씹은 느낌이 나는 결사체이다.
그들의 심볼을 그대로 찍어낸 조형물에 일말의 공공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일베 조각상 훼손에 대하여 진중권 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파손자들이
이 사회에 훨씬 많은 해악을 끼치며 또한 민주주의의 적들'이라는 논지의
해석에 대하여 일컬어 ‘진빠’들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물론 그의 표현대로 나치를 다룬 작품(?)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다수가 일회성 퍼포먼스이거나 조롱의 소재일 뿐이었다.
일베의 조형물을 이것들과 수평적 예술작품으로 등치 시키는 그의 비논리성에
다시 한번 조소를 보낸다.
미학자?

공분하는 이들의 말처럼 세종로에 김일성 동상을 세운다면?
위안부 할머니 소녀상 손에 욱일승천기를 쥐어준다면?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표현의 자유라고 우긴다면?
이 분야를 수박 겉핣기 식으로라도 전공한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과연 이 조형물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울만한 일말의 공공성이 있기는 있는가?
더불어 예술적, 미학적 가치는?

사족/ 작품의 이름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이지만
        일베는 지금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계층 간 소득의 이격화,
        사회의 병리화가 심해질수록 확산속도는 기하급수적이 될 것이다.
        하더라도 작품명이 철학적이긴 하다. 

 

Written by J.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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