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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雜說)/잡설(雜說)

[雜說]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5

by Like the Wind... 2014. 8. 5.

다음 글은 7월 중순경 한겨레 신문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대통령에게 보내는
예순 여섯번 째 편지이다.
지난 번 올렸던 [雜說] 한홍구 교수 특별기고문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와는
또 다른 시각에서 현재 진행 중인 국제 열강들의 한반도 헤게모니 찬탈 과정 상황을
통렬하게 지적한 글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의 정치권의 치졸함 (80%이상은 새누리당의 보이콧으로
결렬 중 이므로 싸잡아 '정치권'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유병언 일가를 세월호 참사의 유일한 주범으로 지목하여 100여 일 동안
생중계 쇼를 벌이고 있는 일부 종편과 그에 동조하는 상당한 다수의 비 인격체들

2014년 즈음.
김해 여고생의 처참한 살해사건, 윤일병 구타 살해사건 등은 이제 경악 할 패륜이 아니라
일반적 사고로 받아들여지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자주, 자긍, 최소한 이 단어가 이 공동체에 교감이 된다면 그러한 잔인하고도
사람이라 불리지 못할 행동들은 줄어 들것이라 확신한다.
언제까지 천민자본의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언제부터나 열강들의 먹잇감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정치인들에 의하여
국가가 운영 될 것인가?
과연 그런 희망을 갖는다는 일이 '사치'라는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5
한국이 어쩌다 불판 위의 호떡 신세가 되었나
‘군사 주권’ 없는 남한은 열강들이 군침을 흘리는 먹잇감
 미-중 패권경쟁 벗어나려면 남북 대치 상태부터 해소해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의 사열을 마친 뒤 환영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1박2일 방한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떠나자마자 온갖 매체, 온갖 평자들이
구한말 한반도 정세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세월호 참사’가 상징하듯 내정은 뒤집힌 배와 같고, 밖으로는 열강이
한반도 패권을 놓고 노골적으로 각축하는 까닭입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의 형국입니다.
이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이 지경이 됐으니,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걱정만 깊어갑니다.
불과 1년 전 당신과 동지적 관계에 있던 매체들은 당신의 중국 방문을 놓고
마치 중국이 북한을 제쳐놓고 한국과 밀월 시대를 열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이번에 시진핑이 취임 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다는 사실만을 놓고도
중국의 선택이 ‘북에서 남으로’ 옮겨왔다며 제 논에 물 대기 식 찬사를 늘어놨습니다.
그랬던 매체와 평자들이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나오자, 아예 저주 섞인
평가까지 내놨습니다.
한 신문은 5일치 사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원칙 없는 줄타기가 능사는 아니다.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탄핵 운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표변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주의자들의 각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십년 이십년 전의 일도 아닙니다. 구한말부터 있었고, 해방 공간에서도 있었고,
냉전이 끝나면서 다시 고개를 든 것이 그런 축이었습니다.
패권주의자들은 한번도 한국을 주권을 가진 대등한 국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시 대등한 동맹관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우리를 제 나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전방 기지로 활용하거나,
국제정치에서 흥정용 미끼로 여겼습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얻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긴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합니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구한말 청일전쟁 이전의 반예속 상태를 꿈꿔왔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일단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분리시키려 했죠.
미국과 일본에서 멀어지면 남한은 자연히 저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앞선 몇몇 정부는 이런 열강의 먹잇감 혹은 흥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무진 애를 썼습니다. 대중국 포위망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거나, 미-일 동맹의
하위개념에 포섭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거부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미 동맹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했습니다.
이때 당신과 그 매체들이 동원했던 비난이 바로 ‘원칙 없는 줄타기’ 혹은
‘종북 외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놓고 이런 수준 낮은 패권 다툼을 벌일 수 있는 건
순전히 남북 대결 구도 때문입니다. 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6•25 전쟁을
치른 입장에서, 지금도 전쟁을 중지한 상태라는 현실은 중국과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합니다.
두 나라가 겉으로는 평화 유지를 위한 보루로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를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보루로 활용하려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일본마저 지금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남한을 위축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일 저녁 청와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패권 각축에서 벗어나는 길은 따라서 자명합니다. 남북이 대치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것뿐입니다.
전쟁 혹은 대결 상태라면, 남은 미국에 북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있는데 북한이 저절로 무너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백일몽입니다.
북한과 대결 상태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미국에 대해 균형외교를 유지려는 것도
잠꼬대와 같습니다.
남북 대결로 말미암은 미•중 의존 상태에서 빠져나와야만 구한말처럼 열강이
군침을 흘리는 먹잇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남쪽이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습니다. ‘군사 주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일본도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는데, 한국은 그럴 수 없습니다.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울며불며 통사정하고 차세대 전투기 구입, 미사일 방어체제 구성,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액 등 나랏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미국에 넘긴 것이
전시작전권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고작 한다는 짓이란 일본의 전쟁할 권리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현실적 위협은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함께 36년간 한반도를
병탄한 일본입니다.

북의 입장에선 군사 주권도 없는 남한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줄 리 만무입니다.
군사 주권을 쥐고 있고, 막강한 첨단무기로 항상 북한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미국이야말로 전쟁이건 평화건 저들의 협상과 논의 상대입니다. 핵은 이를 위한
지렛대이고요.
남쪽이 아무리 고강도의 당근을 제시하거나 군사적 협박을 한대도 눈 하나 깜짝할
북한이 아닙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타국에 군사 주권을 통사정해 넘긴 이 나라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자주독립국가? 속으로 코웃음이나 치고 있을 겁니다.
일본 역시 가소롭겠죠. 미국만 움직이면 한국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과 게임을 하는 것은 사실 미국을 향한 시위일 뿐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독도를 영토 분쟁을 위한 인계철선으로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들 열강에 한국은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잘 익고 있는 호떡일 뿐입니다.
패권주의자들은 지금 포크 하나씩 들고 낚아채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구한말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무능하고 무책임한 조선왕조와 지배자들은 이 나라를 안으로 파먹고
밖으로 내다팔았습니다. 편의에 따라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했습니다. 주권은 위협받고 있었지만, 지배층은 그 틈에서도
제 배를 불렸습니다.
도탄에 빠진 것은 민중이었습니다. 관리들은 토색질에 여념이 없고,
이들이 불러들인 외세는 강토를 전쟁터로 삼아 쑥대밭을 만들거나 민생의 터전을
약탈했습니다.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터진 게 ‘동학농민혁명’입니다.
혁명이 지향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권력의 폭압을 없애고(除暴救民 제폭구민) 나라를 지키고 민생을
안정시키자(保國安民 보국안민)는 것이었습니다.
척양척왜는 나라를 지키는 방책이었습니다. 일본과 서구만 꼽았지만,
실은 중국을 포함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는 모든 외세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라 꼴을 보면 외세의 침탈과 조정의 폭압 속에서 백성이 신음하던
한반도가 떠오르는 건 그래서였을 겁니다.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민중들 사이에선 이런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퍼졌습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게 속지 말자. 일본이 일어나고 중국놈들 몰려온다.
조선 사람 조심하자.” 결국 전쟁이 일어나고 한반도는 조심하자던 상황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120년, 두 갑자가 지난 갑오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판 위의 호떡, 튀김기름 속에 뛰어든 닭 같은 신세로 보입니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 건가요.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합니까.
무능한 정부 대신 국민이 보국안민, 척양척중척왜를 외치며,
등허리에 찍히는 포크의 뾰족한 창에 맞서야 하는 겁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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